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빛 되는 교회 성장의 안내자 / 서재일

빛 되는 교회 성장의 안내자


서재일 목사
(원주 영강교회 담임목사)

[1] 인자(仁者)아닌 인자(人子)이니

제가 신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 장공 목사님은 ‘성서해설’이니 ‘동양학’이니 하는 강의를 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실 때면 ‘사람의 아들’인 ‘人子’ 예수를 쓰셨기에, 저는 무식한 소견에 ‘어진 분’이신 ‘仁者’ 예수이지, 사람의 아들 ‘人子’가 무엇이냐고 항의조로 여쭈었습니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많은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목사님은 잔잔한 음성으로 바로 잡아 주시며 보다 더 철저한 성경공부를 권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성경의 문자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고 어려운 단어 하나 하나의 본 뜻을 알려고 애를 쓰며 또 성경 본문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신학 공부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 목사님은 제게 신학의 길을 안내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이 길을 걷다보니 우리말 성경이 한자 번역이어서 반드시 한자를 많이 익혀 성경을 한자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성경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독일어나 영어로 전달하였기에 이들의 언어를 익혀야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히브리어 희랍어로 쓰여진 성경 원문을 알아야 하겠기에 저의 신학 수업은 이들 언어와의 씨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학비와 생계 유지를 위한 돈을 벌어야만 했고, 더구나 건강도 좋지 않았기에 성적은 겨우 낙제를 면했다고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 때의 무서운 신학훈련은 제 평생의 목회생활 동안에 성경의 바른 뜻과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정황과 언어의 본 뜻을 파고드는 버릇을 갖도록 했습니다.

[2] 전도하라

원주영강교회에 부임한(80년 5월) 이후 어떤 모임에서 장공 목사님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원주기독병원에 친지되는 의사가 하나 있으니 전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즉시 병원에 달려가 전도했으나 이 의사는 반가와 하지 않았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분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전도는 열매를 맺지 못했으나 그 동생 김대원 목사는 어느새 우리 교회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장공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전도 부탁을 받은 이후 저의 목회는 특정 개인을 생각하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음 속의 태신자로 여겨 늘 기도하고 전도해야 된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태신자 품는 마음을 모든 교회 식구들이 가질 때 교회는 알차게 불어 났습니다. 어떤 때는 더하기 숫자로 불어나지 않고 곱하기 숫자로 불어났습니다.

[3] 십일조 헌신

온갖 이단이 난무하는 쭉정이 교단 교회들이 판치는 가운데서 저는 한국교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자세로 목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 박봉랑 박사님으로부터 “본회퍼(D. Bonhoeffer)의 위임통치”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배운 후, ‘무한히 터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목회를 시작하자니 우선은 목회와 관련된 한신의 교수님들의 글(신학과 목회)을 많이 읽어야 했습니다.

이런 독서 목회의 출발 때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글이 장공 목사님의 “바치는 생활”(장공전집Ⅰ)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교회가 너무 가난해서 그랬다고 생각됩니다. 장공은 이 글의 결론으로 십일조 헌금을 강조했습니다.

“나는 지금 십일조에 대한 교인의 태도를 재검토하여 그것을 새로운 교회운동의 기본 원칙의 하나로 요청하고자 하는 바이다. 신교회 내에서 은혜 받은 대로 자유 헌금한다는 원칙 하에서 헌금에 대한 전연 무표준 무정부적인 습관성을 조장한 것은 큰 잘못인줄 안다. 십일조 헌금의 정당성은 너무나 당연하다”면서 5개 조항으로 낱낱이 십일조 헌금 반대자들의 논리를 공격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교회가 해야 할 태산 같은 일들을 돈이 없어 못하는 것에 대해서 탄식하시며 다음과 같이 십일조 헌금을 호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를 하나님의 권위로 당당히 실행하면 내는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쓰는 사람도 주께로부터 받아 주의 일에 쓰는 발랄한 결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호레이스 뿌쉬넬의 말에 ‘이제 다만 한 가지 부흥이 남았다. 이 한 가지 부흥만이 요구된다. 전력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부흥이 일어나면 하나님 나라는 성취될 것이다’ 한 것이 있다. … 크리스챤은 전 우주를 그리스도의 성 생명 안에 포섭한다는 대망에 사는 사람이다. 이 위대한 코스를 위하여 제1선에 부름을 받았거니와 어찌 소유의 십일조쯤으로 우물쭈물하랴! 전 존재를 분토같이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경주장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십일조는 봉헌 생활의 최저 표준을 세운 것뿐이다. 이것도 못하는 자이어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라. 이 위기,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있어서.”

저는 이 글을 읽고 그 다음 주일부터 즉각 시행에 옮겼습니다. 당회나 제직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고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니 순종뿐이라며 선포를 했습니다. 포항 성동, 대구 동부, 영주 중앙, 원주 영강교회를 섬기며 계속 이렇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교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 “십일조를 강조하면 교인이 줄어든다”며 직간접적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 제가 섬기는 교회마다 기적적으로 부흥이 되었고 현재의 원주영강교회는 원주에서 가장작은 교회가 가장 큰 교회로 일어났고 20억원의 예산을 바라 보며[교회 소유 땅은 20년 전의 100평에서 지금은 40,000여평] 우리 교단에서 몇 째 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 교단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방향을 위해 한국 역사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우리교회가 큰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 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잉태했다는 뜻입니다. 장공은 저의 이 바치는 목회와 제 개인의 헌신생활을 보시고 1984년에 “善牧者爲羊捐命” 이라는 글을 써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떤 교단보다도 할 일 많은 우리 기장 교단이 장공을 따른다면서 돈이 없어 일을 못한다니 말이 됩니까! 지금부터라도 저는 우리 교단이 그 사명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 십일조 헌금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사회와 민족 구원 목회

저는 예수 잘 믿고 축복 받고 천국 가는 신앙 운동을 펼치려 신학의 문을 두드렸다가 장공을 만나 천국 가기 전에 민주 인권 평화 통일의 일을 해야 천국 가서 면류관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결심을 굳혔습니다.

첫 결심은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반대투위 위원장으로 장공이 헌신할 때였습니다. 장공을 모시고 4ㆍ19 기념식 날 4ㆍ19 묘지 참배 데모에 참여하면서였고, 두 번째는 역시 “삼선반대”를 외치며 대모 전선의 거리에 몸을 던지다가 검은 피까지 흘리며 경찰 곤봉으로 코와 얼굴을 구타 당했을 때였습니다. 세 번째 결심은 번번히 군사 정권 타도와 민주 정권 세우기의 실패로 실컷 울고 잠들었을 때 장공이 꿈에 찾아 오셨을 때였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이미 고인이 되셨을 때인데 그저 말없이 제게 다녀가셨습니다.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기 위해서이겠지요. 그 꿈이 지난 새벽기도 때 주님께 용기를 달라고 구하며 또 통곡했습니다.

좌절과 통분의 눈물과 함께 새로운 다짐과 결단의 세월을 지나며 저는 계속 장공의 사회 참여 길을 걸으며 교회 부흥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큰 교회들이 군사 독재 정권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과는 반대로 저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장공이 은근히 지지한 김대중 민주 투사는 우리 교회 제단에 두 번이나 서게 되었고 저는 강원도 성직자단 정권 교체 대표로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장공은 이와 같이, 제 신학과 목회의 방향을 잡아 주셨으며, 영강교회의 성장의 불을 붙이셨고, 성장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영향을 주도록 끌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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