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일 목요일

[0904] 말씀을 새긴다 (2) : 예수의 공생애 이전

말씀을 새긴다 (2)
- 예수의 公生涯(공생애) 以前(이전) -


[누가 2:39-40, 2:52 ; 마태 13:53-57]

우리는 전적인 예수를 생활의 전부문에 형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聖肉身(성육신)한 말씀’은 ‘成肉身(성육신)한 신앙’으로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신앙을 제창한다.

우리가 종전까지는 공생애에 나선 때부터의 예수만 중요시하여 우리의 관점을 집중시키고 그를 ‘靈的’(영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신앙의 깊이를 찾는다는 방향을 강조하여 왔었다. 그러나 ‘人間’(인간)으로서의 예수는 ‘靈’(영)으로만 理解(이해)될 것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전부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생은 사생활 30년과 공생활 3년의 생애였다.

물론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그렇다는 말이며, 사실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전생애의 10분의 9가 사생활이요 10분의 1이 공생애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사생애를 좀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사생활 형태에서 우리 사생활의 방향설정을 위한 원칙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① 그는 나사렛에 있는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그들의 아들로 자라났다. 성경 기자는 요셉과 마리아를 ‘아기의 부모’라고 기록했으며(누가 2:16 참조) 마리아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노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누가 2:48)고 했다. 적어도 사람들은 모두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알았고(누가 3:2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것을 긍정하고 있다. 그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으며 그는 다른 어린이들 같이 건전한 가정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② “정결 예식을 행하는 기간이 다된 후에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주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에 희생 제물을 드리고 돌아왔다(누가 2:22-38 참조). 예수는 그 때 할례를 받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부모는 갓난 아기를 안고 나사렛 시골로 돌아왔다. 그 곳 나사렛 시골에서 예수는 자랐다. “아기가 자라고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했다”(누가 2:40)고 했다. 그는 영아 시기에 무럭무럭 자랐고 몸은 튼튼했고 지혜가 차고 넘쳤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량이 그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신체로나 지능으로나 선앙으로나 이주 건전한 아기였다. 우리의 아기도 그렇게 되도록 길러야 한다.

③ 소년 예수의 모습으로 열 두살 때 부모와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이야기가 있다. 절기 행사를 다 마치고 그의 부모가 집으로 돌아가는데도, 그는 성전에 그냥 남아서 “선생들 가운데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혼자 떨어져 있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했다”(누가 2:46-47). 하루길을 가서야 아기를 잃은 줄 알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와 사방으로 찾아다니던 부모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문답하고 있는 소년 예수를 발견했다. “아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 했을 때 그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습니까?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누가 2:48-49) 했다는 것이다.

“선단은 두 잎사귀 때부터도 향기롭다”는 말과 같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그의 인격의 신비가 벌써부터 향긋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년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총애를 받게 되었다”(누가 2:52). 네 겹으로의 성장이라 할 수 있겠다. 정신과 몸이 함께 건전하고 사회와 하나님께 함께 사랑을 받는 소년으로 자랐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소년, 소녀를 어떻게 교육할까? 그 원칙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몸과 마음의 건전한 성장은 사회화의 신앙을 겸한 사량이어야 한다. 사중성장의 하나도 떼놓지 못한다. 근년에 우리 청소년 교육에서 그 중 어느 하나나 둘을 등한시, 또는 무시하는 데서 오는 사회악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소년 범죄니 세대 단절이니 하는 불건전성이 만연하고 있는 오늘의 현상들을 들 수 있겠다.

④ 예수는 30세까지의 청년기를 기술자로서의 노동인으로 지냈던 것이다.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분이고,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누이들은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가 이 모든 것을 어디서 얻었을까?”(마태 13:55-56) 하고 나사렛 사람들은 그를 멸시했다. 아버지가 목수였으니까 직업을 代(대)로 물려 받는 그 시대였으니 만큼, 예수도 목수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소년시절 때 이야기 이후에는 늘상 ‘마리아’의 이름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요셉은 아마도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그렇다면 예수는 젊은 호주로서 그 숱한 식구들의 부양책임을 지고 가정의 생활유지에 나날을 바쳤을 것이 틀림없다. 사람들에게 알려질 정도로 어디 유학을 갔다거나, 도를 닦기 위하여 어디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거나 한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예수가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놀라운 진리를 가르치고 하였을 때, 나사렛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서 “저 사람이 줄곧 우리 동리에서 우리와 꼭같이 살아 왔었는데, 이 모든 것을 어디서 얻었을까?”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건전한 가정에서 자랐고 건전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청년기의 마감 날까지 30년 세월을 받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는 ‘노동’을 했다. 정신 노동도 ‘노동’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는 육체적인 노동을 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니 나도 일한다”(요한 5:17) 하고 그는 안식일에도 구애함 없이 쉬지 않고 병자들을 고쳐주었다. 그는 몸으로 일했고 몸 전체로 섬겼다.

우리가 육체 노동을 꺼린다는 교직자는 교직자답게 언제나 정중한 옷차림으로 다녀야 한다든지 법복을 언제나 몸에 걸치고 다녀야 한다든지 하는 것은 예수의 ‘이미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노동복 차림으로 30년을 소탈하게 지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린다.

크리스찬이 백면서생 같거나 교직자가 창백한 수도승 같아야 그럴 듯한 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것은 종교와 금욕주의와를 하나로 보는 동양의 일반적인 경향이거나 중세기 유럽 교회들의 유풍일 것임에 틀림없다. 예수는 거리의 생활인이었다. 그는 정직하고 근면하고 언제나 고객에게 유감이 없도록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주는 목수였을 것이다. 가족들도 그렇게 훈련시켜 모두 그렇게 노동하며 즐겁게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크리스찬 홈’은 가장 건전한 미래를 낳는다. 크리스찬 홈을 가진 사람들, 크리스찬 홈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크리스찬 홈’이라면 틀에 박힌, 까다로운 규율과 계명으로 아이들을 판에 박아내듯이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한국 교회는 그러한 경향을 적지 않게 행하여 왔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율법주의 가정’이요, ‘크리스찬 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녀들이 지성적으로 자유롭게 성장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장성하고 이웃과 하나님께 고임을 받는 표적이 그 가정의 분위기로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과 하나님께 사랑 받으려면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 일을 자기 일같이 돕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그와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신앙을 가진다면 그 자유로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이 ‘크리스찬 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자기 충족감에 배부른 중산층의 교회로 되고 노동자 층에게는 온전히 이방이 되어버린 이유의 하나가 ‘크리스찬’이 ‘노동하는 직업인 예수’의 모습을 생각지 않고 ‘랍비’(선생) 예수만을 상상하는 데서 생긴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자기들 사회의 기풍에 따라 ‘예수의 이미지’를 자기들에게 맞게 만들어 갔다. 중세기에는 예수를 마치 수도원에 갇혀 있는 수도승 같이 편리하게 그렸었다. 신교에서는 예수를 점잖은 ‘신사 형’으로 그려 그 시대의 문화의 옷을 입은 각양각색의 예수상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찬이면 으레히 ‘젠틀맨’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풍조는 결국 중산층 자본주의 사회에 독점되다시피 했던 교회에서 유행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병고에 시달리는 자들, 사회에 버림받은 사람들, 율법을 어긴 범죄자들, 윤락한 여성들, 어부와 농부 등등을 찾아 그들의 친구가 된 나사렛 예수의 그 본 모습을 똑바로 다시 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우리 교회가 관심의 방향을 이러한 오늘의 시점에 옮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심판 앞에서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 교회가 그러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교회로 될 때, 현존 교회에도 미래가 약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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