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4일 월요일

[1240] 한국역사에서의 5ㆍ16 (1980년 4월 19일)

한국역사에서의 5ㆍ16


동양에서 반란자에 대한 속담으로 “이기면 제왕이요 지면 역적이다” 하는 말이 있다. “왕후장상이 씨가 있으냐 하는 놈이 되는 것이지” 하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해서 폭력으로 왕위를 뺏는 데 성공하면 왕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 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왕위에 오른 사람은 그 기득권을 보존하고 항구화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토벌을 해야 하고 반역자는 어차피 오족이 몰살당할 판이니까 악착같이 싸워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녹는건 백성이다. 군량을 대어야 하고 그걸 실어 날라야 하고 종당에는 젊은 자식들을 싸움터로 뺏겨야 한다. 그들 역시 “이미 이렇게 된 바에는 이기고 봐야 한다. 그래야 약탈품이라도 나눠 가질 수 있고 부녀자 능욕할 기회도 생긴다”고 덩달아 잘 싸운다. 그런 판국이니까 좀 잘났다는 녀석은 엉덩이 들먹거려 가만있질 못한다. 왕이 되든 역적이 되든 한번 해 보자는 쪼로 된단 말이다.

박정희와 그 일파도 이런 동기에서 5ㆍ16반란을 일으켰는지, 훨씬 더 높은 건국이념이 있어서 ‘일사’(一死)를 각오한 것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했었는데 집권하고 나서 권력 중독증에 걸렸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제왕전제의식, 제왕 세습제 같은 습성이 심층에서 의식층에로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정부에 충성을 서약하고 국군장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적을 막으라고 장비해 준 무기를 들고 끌고 자기 정부를 습격했다. 그래서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볼 때 ‘배신자’요 ‘배반자’임에 틀림없다. 민주당 정부는 4ㆍ19에서 탄생한 공정선거 – 즉 민의를 대표한 첫 정부였다. 민주헌법에서는 언제나 국민이 주권자인 것이며 그 당시 우리 헌법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박정희 일파는 반란 직후 민의원, 참의원, 그리고 지방의회를 해산시키고 모든 정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을 금지했다. (포고 제4호)뿐만 아니라 소위 ‘정치활동정화법’이란 것을 (포고 제6호) 만들어 5ㆍ16 반란 이전의 정치인들의 자격심사를 감행하였다. 거기 걸린 구 정치인들이 4374명이라고 발표되었다. 다시 적격심사를 받은 3038인 중에서 그 해 12월 31일에는 171명, 1963년 2월 1일에 268명을 해제했다. 그외 사람들은 정치활동이 금지된 대로 있었다. 그래놓고서 자기들만은 김종필을 내세워 비밀리에, 여당이 될 공화당 창당운동을 진행시켜 그것이 절대다수당으로 만들어진 다음에사 1963년 1월부터 구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허락했다. 이것은 씨름할 상대방을 야밤중에 몰래 결박해놓고 제멋대로 때리는 비겁한 선수와 같다. 아무리 군사정부를 항구화하려 해도 민의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시 민주정부라는 ‘탈바가지’를 쓰고 데뷰하려는 그들의 음모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있어서는 ‘민정’이란 ‘군정’의 탈바꿈에 지나지 않았다. 민심은 이반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럴수록 탄압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김종필의 K.C.I.A는 대공사찰에서 대국민 사찰로 방향을 바꿨다. 국가는 경찰국가로 변모되어 갔다.

1961년 8월 12일, 2년 후에는 민정으로 옮겨 맡기고 자기는 군인 본연의 업무에 돌아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믿은 구정치인이나 국민은 너무 순진했었다고 할까? 어쨌든 반란 직후에 발표한 ‘혁명공약’이라는 걸 좀 더 자세하게 음미해보면 장기 집권의 저의가 그 속에 포태되어 있었고 그 내세울 구실도 은근히 마련돼 있었던 것이다.

①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것은 미국이 남한을 점거한 것 자체가 대공 냉전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외 어느 자유 진영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이것이 ‘슬로건’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태세를 재정비, 강화하여 언제든지 실력대결을 사양치 않는다는 실제적인 다짐이 미국정부의 맘에 들었을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승만은 반공, 친미였지만 친일에는 미국을 거북한 입장에 서게 한 일도 있었고 그의 ‘독립정신’ 때문에 미국에 친근하면서도 시녀됨을 싫어한 실례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4ㆍ19를 계기로 미국대사는 그의 퇴임을 강권했었고 장면 정권은 친미, 친일이었지만 반공에는 시덥잖은 약세여서 미국의 불안을 샀었다 한다. 그래서 미국은 박정희 군사반란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박정희가 공산이북에 대한 실력대결을 공약의 첫 조항에 넣었다는 것은 그의 장기집권을 위한 첫 포석이고 뿌리박을 터전이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5항에서 거듭 다짐하기까지 했다.

② 국제헌장준수, 자유우방과의 유대강화 등등은 관례적인 문구들이지만, 특히 일본에 대한 저두(低頭) 외교, 미국에 대한 예속(?) 정치를 ‘친선’이란 이름으로 막아 볼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일국교 정상화 때에 박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경험한 바 있었다.

③ 한국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

④ 절망과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조속히 해결하고 국가 자립경제의 재건에 전력을 경주한다.

⑤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⑥ 이상의 우리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제6항이다. “위에 열거한 과업이 성취되면…” 이란 ‘조건부’가 첫째 문제다. 모든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일소한다. - 이것은 인간성 자체의 범죄성과 시장(Market) 민주주의의 제도적 불가피성에 직결된 조건인데 그것이 ‘일소’ 되는 것을 성취하고서야 나가겠다는 것은 “황하물이 맑아질 때까지는 나가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말투다. 그 이상 더 노골적인 장기집권 선언이 어디 있을까 싶다.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일으킨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도의와 민족정기가 국가의 주권을 강탈한 반역자에 의하여 바로잡힌다는 것을 누가 믿을 것인가? 도적이 “도적이야!” 하며 뛰는 것은 여기 비하면 오히려 신사적이라 하겠다.

“절망과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조속히 해결하고 국가자립경제를 재건한다”는 것도 제1차 5개년, 제2차 5개년 계획 등등이 그대로 된다셈치더라도 그것은 장기전이다. 그것이 성취한 때에사 물러나겠다는 것은 적어도 “관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청와대를 안떠난다”는 선언과 같다. 이 경제재건에 대하여는 그의 공적을 찬양 또는 과시하는 사람들이 국내 국외에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외자도입에 의한 것이라는 데 난제가 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80년도, 즉 금년 한해 동안에 차관원리금 상환액만도 28억불이고 거기에 원유값 추가부담액 27억불을 더하면 55억불의 빚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불경기에다가 수출은 줄고 노임은 오르고 생산을 위한 원자재는 계속 수입해야 하고, 통화는 날로 팽창되고 – 국가자립경제는커녕, 그 동안 잘 살게 됐다던 선전마저도 허풍선이 되고, 남은 것은 빚더미 뿐인데 그것은 결국 국민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또 하나의 기적이 생겨날 때까지는 내가 도사리고 앉아 있어야 하겠다는 장기집권 선언이었다.

또 하나 “참신하고 양섬적인 정치인에게”란 정권이양 조건이 있다. 이 ‘참신하고 양심적인 인물’이란 것이 어떤 가치기준에서 측정되는 것인지, 그것을 측정하는 주역은 누구인지, 그런 것은 밝히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자기들이, 또는 박정희 혼자서 그렇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니까 이런 조항은 장기집권을 위한 구실밖에 될 것이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런 분이 없으니 내가 또 ‘십자가’를 질 밖에 없다”고 갸륵해질 것이다.

또 하나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한다.” ‘언제든지’란 말은 불확정한 날짜여서 하나마나한 얘기다. 50년 후도 백년 후도 ‘언제든지’에 들 수 있다.

그리고 맨 마감 조건이 걸작이다.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무에 복귀한다”는 것은 원칙적인 얘기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실시하느냐는 방법론은 또 다른 문제여서 그때부터 그 준비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왜 정권이양을 안 하느냐?”고 물으면 “아직 준비가 덜되어서 그러오” 하면 그만이다.

그럭저럭 간교하게 탈을 바꿔쓰면서 두 가닥 헛발을 묘하게 놀리며 18년을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다짐한 대로 관속에 거꾸러져서야 청와대를 나왔다.

나는 그의 정권을 ‘反動’(반동)이라고 「제3일」지 48호에 쓴 일이 있다. 그것은 ‘바른 움직임’ 즉 ‘正動’(정동)에 역행했다는 것을 뜻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18년간 집권은 한국역사의 정사(正史)에 기록될 수 없다고 누누히 말해왔다. 그것은 역적으로서의 통치기간이기 때문이다. 역적이란 것은 나라의 주권자에게서 강제로 그 주권을 탈취한 장본인을 의미한다. 왕조 시대에는 임군이 그 나라의 주권자였기 때문에 임금을 반역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탈취하려는 사람을 ‘역적’이라 하였다. 역적은 삼족, 또는 심하면 오족을 멸하는 규례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헌법에서도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국민에게서 이 주권을 약탈하여 자기 한사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역적’의 부류에 해당된다. ‘독재자’란 그 효능여하를 막론하고 ‘역적’인 것이다. 주권을 뺏긴 국민은 무존재와 같다. 긍지를 느낄 수도 없고 즐거울 수도 없다. 나라 일에 참여한다는 각도에서 는 노예나 가축의 차원에 전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자기의 ‘오른팔’이랄 수 있었던 KCIA 부장 김재규에게 사살되었다는 것은 한 개인의 특정범죄 사건이 아니라 전국민의 분노가 그에게 작용한 하나의 의거 또는 혁명이었던 것이다.

역적이 토벌된 다음에는 토벌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그것을 보고하고 군인 ‘본연의 위치’에 돌아기는 것이 상식이다. “나선 김에, 자기도 한번!” 이라는 악순환은, 글자 그대로 ‘악순환’이어서 그들 자신에게도 ‘악’이 되고 국민에게도 ‘악’이 된다. 그리고 그 악은 그들을 또 먹어버릴 것이다.

이제부터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신차려 똑똑히 굴어야 한다. 우선 ‘민주주의’ 즉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란 것을 철저하게 의식화해야 하겠다. 그리하면 적어도 ‘독재’라는 최악의 정치형태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고 뭐고 나는 모른다. 개가 먹든 쥐가 쓸든 내 알바 아니다. 모두 시들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내 살 구멍이야 있겠지”, “정치는 정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내 식구나 돌보겠다. 주어진 체제 안에서 비교적 잘 살고 자녀들 출세나 시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이런 따위 의욕제한에 의한 적응에 칩거(蟄居) 한다면 겨울벌레 같아서 오래 가면 살기보다도 죽기 공산이 클 것이다. 특히 정신활동면에 있어서는 그것 자체가 ‘인간성 질식’이다.

그러니까 국민 하나 하나가 나라의 주인이란 의식을 갖고 국정에 참여해야 한다. 나라가 어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 알려주지 않으면 ‘알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것을 비판할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 - 자기에게 속속들이 비판할 능력이 없다면 이 사람 저 사람 ‘엘리트’들의 강연을 듣고 묻고 토론하고 해야 한다. 이런 계몽활동을 위한 학생들의 지방 유세는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며, 문맹이 없는 우리 국민에게는 신문 등 언론기관의 역할이 또한 백퍼센트 가까이 주효할 것이다. 학교교육에서 민주지식을 제공하는 교과서 내용을 가르치고 학교 생활에서 그것을 성격화하는 훈련을 실시하면 어른되었을 때 민주국민 노릇하기가 자연스러워진다.

기성세대의 유물을 다음세대에 강매하지 말라는 것이 미래창조를 위하여 일리 있는 충고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란 전승에 의하여 발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해주고 전해받아 익히는 수고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세대가 스스로 원시시대에서부터 재출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바보짓이다. 그리고 본능이 도덕과 이성을 깔아뭉개도록 방치하는 것이 ‘인간 자유’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린이 교과서에서 도덕의 기본질서 - 십계명이나 기독교에서의 ‘이웃 사랑’이나 정의를 위한 예언자적 활동이나 그 밖에 성현들이 교훈 등등을 가르친다는 것은 바른 인간, 존엄한 인간상 형성에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된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재고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어쨌든, 박정희가 모든 것을 자기에게서부터 시작하고 자기들은 ‘인간악’에서 해탈된 존재인 것같이 오만불손했다는 것은 구토를 느끼게 한다. 몇달도 못되어 ‘구악’보다 어머어마하게 더 악마적인 ‘신악’이 자기들 밀착된 그룹 속에서 ‘출생’됐다는 것은 웃지못할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의식할 양심도 없을만큼 도덕적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이런 정신적 도덕적인 메마름은 그들의 문제꺼리도 되지 않았다. 다만 ‘돈’벌이에 대한 관심만이 극대화되었다. 그래서 경제제일주의가 제창되었다. 현재 기술학적 사회에 있어서 돈벌이 기관이라면 공업화밖에 추구할 데가 없다. 농업은 돈벌이판에서의 낙제생이다. 갑자기 돈을 벌려면 생산을 극대화해야 하고 생산을 극대화하려면 소비도 극대화해야 한다. 시민의 소비욕을 자극시켜야 한다. 그러니까 무리한 사치가 가정을 들뜨게 한다.

생산 극대화는 물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력(人力)도 극대화해야 한다. 이것은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만이 아니라 소비하는 시민 전체가 함께 극대화 행렬에 참여해야 한다. 또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근로자 수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일반시민의 행동력, 창조력, 심미력, 친교, 오락 등등이 극대화된다.

이런데 순응하기 위하여 생산을 촉진한다. 또 그런 의욕적인 인간들을 채용함으로서 생산이 촉진된다. 그래서 산업사회에 발동이 걸린다. 출발하여 전진한다. 그러나 종착점은 없다. 멈추면 파멸이다. 한정 없는 욕구, 한정 없는 공급, 한정 없는 소비 - 산업사회의 중독증이, 원래 허약한 체질인 한국산업을 ‘병신’으로 만든다. 일본이나 미국같은 소위 선진 산업국가에서는 이에 대한 치료기관이 갖추어져 있고 어마어마한 국가자본이 축적되어 있으니 응급치료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파산이면 ‘파산’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호소할 데가 없다. 큰 회사가 다섯쯤 남을지 모른다는 말도 있다.

정신도 도의도 거치장스럽다. 돈만이 실력이요 정치자금이 곧 ‘정치’다. 그래서 돈을 신주로 모신다. 자본 덜들고 돈버는 묘안이 없을까? 그건 매음과 도박이다. 그래서 워커힐이 생기고 제주도에 지유항이 생기고 호텔마다 우리 어린 자매들이 놈팽이, 특히 일본 ‘관광객’들 품에 안긴다. 이건 그 아가씨들 개인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정치체제의 제물이다. 집권자가 숨은 매음업자로 됐다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이런 것은 일종의 인신매매일텐데 인력 극대화도 이에 이르면 ‘탄복’의 대상일지 모르겠다. 하여간, 저임금 인력, 인력수출, 인력매매 등등도 이제는 한계선에 부닥쳤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으니 더 이상 해낼 수도 없겠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에는 이런 허구와 죄악이 그 옥좌를 치받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북에서는 다같이 일해서 그 잉여 가치는 다같이 정부에 바친다고 한다. 그리고 최저 생활비는 정부에서 다같이 부담, 분배한다고 들었다. 축적되는 재산은 모조리 국가 소유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도 ‘인간’이요 천시는 아닐 것이기에 자기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자기와 자기 가족을 자기가 건사한다는 ‘프라이드’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 없는 개인으로서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 없는 사회로서 행복할 수 없을 것도 사실이다. 감옥에서 아무리 잘 먹고 생존조건에 위협이 없다 하더라도 감옥살이가 좋달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인 노릇을 해 본다고 모험하면 강제노동소란 이름의 감옥안 주민으로 입적하게 된다. 자그만치 19만명이 거기서 죽지 못해 살다가 살지 못해 죽는다고 한다. 인간학대의 극대화랄까! 적색독재든, 백색독재든, 독재자 밑에는 인간이 없다. 개인 자유없이 개인주체 (Identity)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남한의 독재자는 죽었으니 인간 되찾기의 길목은 열린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포장된 신작로는 아니다. 길부터 닦아야 한다. 민주정치인, 민주시민, 민주군대, 민주지성인, 그리고 민주근로인, 모두 모두가 길닦기에 나서야 할 판이다. 길을 닦으려면 설계도가 있고 자재가 마련되고 기술자가 있고 감독이 있고 - 그래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하려는 단결된 민심의 지지다. 국민은 어리석은 것 같아도 속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들은 육감으로라도 알 것은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나라의 주권자다. 노동자, 농민, 빈민, 천민을 합하면 국민의 절대다수다. 절대다수의 주권자를 무시 또는 소외하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눈먼 뱀구실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몽둥이에 맞아 쓰러질 것이 뻔하다. 지금부터의 정치인은 싫으나 즐거우나 민주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배겨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이나 북이나 같은 운명에 있다. 돌이켜야 산다. 인간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추종하기에는 너무 현명하다. 남을 비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를 비판할 능력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권력에 굴종하기에는 너무 자주적이고 자유적이다. 자주, 자유 없이는 인간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개새끼 구실을 하면서도 남을 “이 개새끼야!” 하고 욕설을 퍼붓고서야 시원해지는 것은 자기도 상대방도 개새낄 수는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에게 ‘충성’이라는 덕목이 높은 평가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충성은 ‘충견’(忠犬)을 의미할 수는 없다. 유교에서의 ‘충효’(忠孝)란 것이 폭군에 대한 무조건 복종이나 가정을 버리고 윤락에 매몰된 아비나 어미에 대한 무조건 추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공자나 맹자가 스스로 언명한 바 있다. 참 충성은 임금의 잘못을 목숨걸고 못하게 하는 데 있다. 참 효도는 아비의 잘못을 막기 위하여 아비와 다투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임금이나 아비가 더 큰 테두리 안에서 더 큰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책임 수행에 방해되는 일은 억지로라도 못하게 하는 것이 참 ‘충’이요 ‘효’라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KCIA 김재규 부장의 박정희 사살 사건도 박정희에 대한 그의 참 충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그의 대법원에서의 최후진술 내용은 그런 것으로 이해된다.

요컨대 “정치는 힘이다” 하는 것이 정설이라 하더라도 “힘이 곧 정치다” 하는 논법은 성립될 수 없다. 정치는 적어도 국민의 자유와 정의와 질서를 보장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것은 도덕적인 명제들이다. 그 힘은 이런 도덕적인 내용을 가진 힘이어야 한다. 그들은 언필칭 ‘안보’ Security를 내세운다. 안보를 위하여 자유를 유보(留保)한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독재체제인 경우 그 안보는 독재자의 정권안보로 귀착된다. 국가주권이 독재자의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안보 곧 독재권력 안보가 된다. 그러나 그런 실상은 히틀러나 스탈린 시대만으로 족하다. 지금까지 그 망령에게 주물려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박정희의 망령이 출몰하여 적잖이 영향을 준다. 18년이나 그 그늘에서 생존해 왔으니 그것이 생활양식에 습성을 심었을지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권욕을 초월(?)한 야당인사 총동원에 의한 국민의 민주화운동 촉진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다음의 민의에 맡기고 담당해야 한다. 국민은 인위적인 ‘조종’에 지쳤다. 좀더 자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위정자의 진실과 성의를 기대한다. 교회는 국민에게 ‘혼’을 심어야 한다.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활력소가 되어야 한다. 박 독재 아래서 그 구실을 위하여 ‘수난의 종’ 노릇을 했다는 데 한국교회의 자랑이 있다. 그것이 새 나라 세움에 한 ‘애쎗’이 됐다고 믿는다. 이 일은 중단될 수도 없고 중단되어서도 안된다. 박정희 다음에는 ‘유토피아’가 온다고 속단할 교회는 없을 것이다. 끝까지 집요한 인간악, 구조악과 싸우는 ‘전투의 교회’로 지속될 것이다.

가령 남북통일이 된다면 교회로서는 더 심각한 전투와 수난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 - 그것이 교인됨의 생활이며, 수난 후에사 영광이 온다. 그 영광은 부활과 희망과 승리라는 종말학적인 영광이다.

공자님 말씀에 선과 악이 다 내 스승이다 하는 귀절이 있다. 선한 것은 택하고 그대로 배우고 악한 것은 깨달아 물리치게 되면 둘 다 내게 유익한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유민주 운동에서 그 장점을 배우고, 박정희나 김일성의 독재에서 그 잘못된 점을 알아서 그것을 답습하지 않게 된다면 둘 다 좋은 ‘스승’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강을 세우기 위하여 엄정한 징벌도 없을 수 없으나, 그것은 사심의 ‘보복’이 아니다. 요는 남한의 민주화와 통일된 민주 민족국가 건설에 총체적인 국민단결이 촉진되는 데 예외없이 이바지하게 되기 위해서다. 작은 일도 큰 구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큰 일도 작은 일속에서 싹트게 하는 지혜의 비밀을 간직해 주면 좋겠다고 기원해 본다.

(1980. 4. 19)

댓글 1개:

  1.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사살된 이후... 혼란의 시기를 틈타서 전두환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언론이 신군부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공 김재준 목사는 박정희의 죽음 이후, 국민이 일치 단결해서 한 차원 높은 단계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남한의 독재자는 죽었으니 인간 되찾기의 길목은 열린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포장된 신작로는 아니다. 길부터 닦아야 한다. 민주정치인, 민주시민, 민주군대, 민주지성인, 그리고 민주근로인, 모두 모두가 길닦기에 나서야 할 판이다. 길을 닦으려면 설계도가 있고 자재가 마련되고 기술자가 있고 감독이 있고 - 그래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하려는 단결된 민심의 지지다. 국민은 어리석은 것 같아도 속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들은 육감으로라도 알 것은 알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나라의 주권자다. 노동자, 농민, 빈민, 천민을 합하면 국민의 절대다수다. 절대다수의 주권자를 무시 또는 소외하고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눈먼 뱀구실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몽둥이에 맞아 쓰러질 것이 뻔하다. 지금부터의 정치인은 싫으나 즐거우나 민주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 이외에 배겨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이나 북이나 같은 운명에 있다. 돌이켜야 산다. 인간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추종하기에는 너무 현명하다. 남을 비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초월하여 자기를 비판할 능력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주장하면서 장공 김재준 목사는 인간에 대해... 아니 국민에 대해 많은 신뢰를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솔직히 국민의 의식은 최근 촛불시위를 통해서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어쩌면 상황적으로 국민의 그런 가능성을 소위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서 '우매한 백성'이라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박정희의 죽음 이후에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 된 것은 국민의 우매함이 아니라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정권에 대한 야욕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1987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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